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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 프론티어
소닉은 어느 것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나도 메가드라이브 시절에 클래식 소닉 시리즈를 즐겼고, 드림캐스트로 등장한 최초에 3D 작품인 ‘소닉 어드벤처’를 좋아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소닉은 -특히 미국 시장에서-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캐릭터는 물론이거니와, 게임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가가 2001년 하드 사업을 철수한 뒤에도 소닉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영화까지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게임으로서의 소닉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무대의 최전선에 서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닉 프론티어가 등장했고, 이이즈카 타카시 프로듀서는 이 타이틀을 “모든 것이 혁신적인 3세대 소닉”이라고, 키시모토 모리오 디렉터도 “다시 한번 세계에서 빛날 수 있는 소닉팀이 되자”는 각오로 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닉 프론티어는 결국 어떤 게임인지 묻는다면, 약 30시간에 걸쳐 PS5 버전으로 플레이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프로듀서의 말대로 신세대 소닉임을 확인했고, 디렉터의 말대로 다시 한번 세계에서 주목받기에 적합한 타이틀이다. 세가가 자사의 하드를 만들던 시절, 자체 하드를 팔기 위해 투입한 소닉 시리즈들처럼 기백과 야심이 느껴진 타이틀이다.
소닉 프론티어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픈 존'이라는 필드이다. 게임의 무대인 ‘스타폴 제도’는 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섬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광활한 필드가 ‘오픈 존’이라는 이름으로 준비되어 있다. 여러 개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모험한다는 의미로 보면, 몬스터 헌터 월드나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와 비슷하다.
개발진은 그동안 인터뷰에서 오픈 존과 오픈 월드는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여러 개의 필드로 구성되고 특정 장면에서 게임이 2D로 바뀌는 등의 요소 등이 있어 엄밀히 말하면 오픈 필드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넓게 바라보면 오픈 월드와 크게 다른 디자인도 아닌 것 같다. 필드를 마음대로 뛰어다니면서 중간에 도전 요소를 자유롭게 경험하는 플레이 체험이 그야말로 오픈 월드 체험과 가까웠으며, 그것도 양질의 오픈 월드 체험이라 말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에서 놀 수 있는 요소가 다양하고, 놀라운 발견과 매력적인 적과의 만남이 있다. 이동 도중에 오브젝트의 팝업 현상이 보이지만, 비주얼이나 퍼포먼스도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만들어졌고, 버그를 겪는 일도 거의 없었다.
결국 소닉 프론티어는 ‘오픈 월드 풍’ 작품으로도 높은 수준에 이른 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이 소닉다움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음속의 고슴도치만이 보여주는 속도감과 스프링 및 그라인드 레일 등을 활용한 플랫폼 액션이 다른 오픈 월드 작품에 없는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픈 존은 소닉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닉이기에 만들어진 게임 스타일인 것이다.
이러한 소닉 프론티어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가 스퀴드(SQUID)와의 보스전이다. 스퀴드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드래곤들처럼 스퀴드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이며, 오픈 존의 재미있는 점은 자신의 발로 다가가 정체를 파헤치는 것도 있기에, 높은 곳에서 점프하여 꼬리 부분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을 발견하자 갑자기 전투가 시작된다. 음악은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에너지 넘치는 테크노로 바뀌며, 소닉은 레이스 게임 같은 감각으로 스퀴드의 머리를 노린다. 날아오는 발사체를 그라인드 레일을 갈아타듯 피하면서 호밍 어택으로 머리를 노리는 이 전투는 지금까지의 3D 소닉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스케일의 전투이지만 특유의 고속 액션은 그야말로 소닉 게임 그 자체였다.
제한 시간 내에 특정 지역까지 달려야 하는 레이스 챌린지, 그냥 라이트 대시를 해보고 싶어지는 링 라인 배치, 거대 보스를 따돌려야 하는 체이스 이벤트 등등, 소닉다운 액션을 오픈 존에서 활용하기 위한 장치는 많이 준비되어 있고, 액션 하나하나는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경험하지 못했을 정도로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러한 액션을 어떤 방향이든 이동할 수 있는 필드에서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바뀐다.
움직이면서 생긴 궤적으로 포위망을 만드는 ‘사이 루프’라는 새로운 스킬이 고속 액션의 진화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사물이나 적을 둘러싸면 뭔가가 일어나며, 수수께끼에 사용되는 정적인 놀이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이 루프는 부스트 대시 도중에도 사용할 수 있기에 이 게임에서는 소닉이 원을 그리며 달려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타워(Tower)라는 보스와 싸울 때 소닉이 타워가 쏘는 대량의 미사일을 피하면서 대시로 사이 루프를 사용해야 하는 흐름은 새로운 감각이면서도, 소닉 특유의 고속 액션까지 놓치지 않았다.
필드에 있는 스프링이나 대시 패널을 한번 타보면 바로 플랫폼 챌린지가 시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챌린지의 대부분은 선형 방식이기에 오픈 존의 자유도를 활용하지는 않고 있으며, 게임 후반부는 이러한 플랫폼 액션을 피하는 것도 쉽기 때문에 나는 챌린지보다 자유롭게 섬을 탐색하는 방식을 우선적으로 즐기게 되었다.
고속 액션이 주체이면서도 그만큼의 체험을 충실하게 안겨주었냐 따진다면 부족한 부분도 있다. 한 번밖에 밟을 수 없는 바닥을 차례로 밟아가거나, 줄넘기에 도전하는 챌린지도 많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별로 없다고 해도, 무대 전체에 수수께끼 풀기 및 미니 챌린지가 꽉 찬 게임의 흐름은 환영할만한 변화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시각적인 변화도 풍부하여, 거탑이 멀리 보이고 하늘 위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셔틀 루프와 그라인드 레일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도달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오로지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닉 프론티어는 플레이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중요시했는지 미니맵도 없다. 미니맵이 없는 것에 불만인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나는 이 게임 디자인에 미니맵은 불필요하다고 느꼈는데, 어떻게 즐기든 필요한 아이템을 입수할 수 있고, 카오스 에메랄드 등 메인 스토리의 목적지는 항상 필드에 알기 쉽게 표시되어 있었다. 긴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장치도 있다.
이처럼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필드의 비밀을 꽁꽁 감춰놓은 스타일은 엘든 링과 비슷한 디자인 철학이라고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감각. ‘보여주지 않는’ 디자인은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 어울리는 결정이다.
물론 즐기는 방식이 끊임없이 다양한 것은 아니기에, 게임을 즐길수록 플레이어는 앞으로 어떤 방식의 플레이가 기다리고 있는지 예측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 섬에 도착한 무렵부터는 대부분의 수수께끼나 챌린지 방식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각적인 변화도 수수했기 때문에 좀 질질 끈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적들이 나타나며 ‘이카루가(Ikaruga)’를 방불케 하는 슈팅 게임이 시작되자, 역시 이 게임은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탑을 오르거나 비행형 적에 올라타 옆 섬까지 날아가는 듯한 장면에서는 체험의 스케일에 취해버리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소닉 프론티어가 최고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과 견줄 만큼 세련된 부분으로 꽉 찬 것은 아니지만, 놀라운 게임 전개와 많은 발견 요소를 고려했을 때 탑클래스의 오픈 월드 풍 작품이라 부를 수 있다.
오픈 존 이외에도 소닉 프론티어는 ‘전뇌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시리즈의 플레이 방식을 즐길 수 있는 스테이지가 30개나 준비되어있다. 전뇌공간은 3D와 2D 스테이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후반에는 긴 스테이지도 존재했다. 비주얼의 테마가 적고 베이스가 과거의 스테이지기에 최근 소닉 게임들과 비교하면 만듦새가 얕아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오픈 존에 더해 이 정도 분량의 스테이지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스테이지 결과에 따라 게임 진행에 필요한 아이템도 얻을 수 있기에 오픈 존과의 연결도 탄탄하다.
이외에도 미니 게임은 낚시를 시작으로 메인 스토리와 연관된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 섬마다 보스전까지 있기 때문에, 소닉 프론티어 콘텐츠 양은 굉장히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 물론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낚시는 심플한 방식이라 오래 즐기기 적합하지 않고, 보스전은 화려하지만 파고들 요소가 부족하다. 그러나 이러한 콘텐츠들이 하나의 거대한 사이클이 되면서 질리지 않게 게임 루프가 만들어져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소닉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역시 에너지 넘치는 인상이지만, 오픈 존은 조용하면서 신비한 느낌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게임 진행에 따라 같은 섬이라도 음악이 변하며, 전뇌공간에서는 에너지 넘지는 테크노 음악이, 보스전에서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연상케 하는 보컬곡이 흘러나온다. 이처럼 장면에 따라 흐르는 적절한 음악이 게임의 다양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게임의 이야기는 숙적인 에그맨의 뒤를 쫒던 소닉과 친구들이 스타폴 제도라는 신비한 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테일즈, 에이미 등과 동떨어진 소닉은 혼자 섬의 수수께끼를 풀고 동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결과적으로 게임의 이야기 자체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구성이 아니다. ‘기계 생명체에 자아가 생긴다면?’같은 메타적 요소가 깔린 이야기도 존재하지만, 이것조차 알기 쉽게 그려진다. 따라서 이야기를 즐길만한 요소는 별로 없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벌어지는 상황 자체는 게임의 리듬을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게임 중에서 특히 뛰어난 보스는 역시 전투다. 통상적인 전투부터 보스전까지 각각 쓰러뜨리는 방법이 다르도록 전투 디자인이 풍부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보통은 앞서 언급한 스퀴드처럼 소닉의 스피드를 살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전투가 메인이지만, 고속 발차기로 무수한 충격파를 날리는 공격인 ‘소닉 붐’ 같은 신기술을 염두하고 디자인된 전투도 있다.
소닉 프론티어는 전투를 통해 적을 쓰러뜨리거나 화려한 액션으로 ‘스킬 피스(포인트)’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스킬을 개방할 수 있다. 거의 필수적인 기술도 있지만, 후반 스킬은 지금의 소닉이 더 강해지는 것이 많기에 꼭 모든 스킬을 개방하지 않아도 게임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기쁜 것은 이러한 스킬이 모두 전투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에어 트릭’처럼 배틀과 전혀 상관없는 스킬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어 트릭은 공중에서 화려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스킬로, 이를 통해서 스킬 포인트를 얻을 수 있기에, 꼭 스킬 습득을 위해 전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플레이해도 게임 후반에는 모든 스킬이 개방되어 있을 것이다.
이번 작의 소닉은 공격력, 방어력, 스피드, 링 소지 상한의 4개의 파라미터가 있고, 각각 레벨을 99까지 올릴 수 있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리는데 필요한 ‘힘의 열매’와 ‘방어의 열매’는 게임의 다양한 도전 요소로 얻을 수 있으며, 스피드와 링은 코코라는 캐릭터를 찾아 장로에게 돌려주면 된다.
레벨 개념이 존재함에 따라 RPG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닉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밸런스 자체가 느슨하게 짜여있으며, 스킬 레벨을 올리는데 필요한 요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 예로, 나는 낚시 미니 게임을 10분 정도 즐긴 것만으로 속도 레벨을 50대에서 최대 레벨인 99까지 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에서 소닉의 스피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면, 꼭 99레벨의 속도를 체감해보기를 바란다. 아슬아슬하게 조절할 수 있는 절묘한 속도감으로 스타폴 제도를 횡단하는 느낌이 상쾌하다. 물론 소지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링을 모으면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되지만, 이 경우는 하나라도 링을 잃으면 보통 속도로 돌아가 버린다.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소닉 프론티어는 문제도 적지 않은 작품이다. 그냥 버튼만 연타해도 클리어할 수 있는 단순한 전투 디자인도 존재했으며, 빠르게 달리는 소닉의 컨트롤이 어려워 바다에 빠지거나, 분명 내 잘못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보스에게 패배한 일도 있었다. 난이도의 밸런스가 잡히지 않은 곳도 많아, 어떤 도전 요소는 너무 간단하거나 심하게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설명도 알기 쉽게 설명되지 않는 등, 실망할 수 있는 요소도 많다.
하지만 소닉 프론티어에서 이러한 경험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소닉의 속도는 광활한 오픈 존에서 컨트롤하기 쉬워졌고, 소닉의 속도를 감당할 만큼의 넓은 무대가 준비되었다. 드디어 시리즈가 안고 있던 많은 모순이 해결된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