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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와 슈퍼콜라
캐리와 슈퍼콜라는 포스터나 예고편만 보면 어딘가 흔해 빠진 양산형 애니메이션으로 느껴지기 좋게 생겼다. 캐릭터에도 큰 개성이 없어 보이고, 미지의 적과 싸우는 줄거리도 그다지 특별한 것 없어 보인다. 애초 얼마나 많은 관객이 진지하게 캐리와 슈퍼콜라를 기대했을까. 분명 이 작품이 바탕을 두는 아동 대상 유튜브 채널 '캐리TV 장난감친구들'은 2023년 3월 현재 203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대형 크리에이터다. 그러나 아동용 애니메이션 다수는 아무리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도 아동용이라는 이유로 작품에 온갖 문제가 가득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빈번했다.
분명 그 예상대로 캐리와 슈퍼콜라의 스토리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미지의 적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적에 맞서는 정의의 세력이 우연한 계기로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한 가족이 된 지구인 주인공과 우주인 주인공은 빠르게 친해지고,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온갖 위기를 극복해 끝내 전 우주를 지배하려는 적과 최후의 승부를 감행한다. 너무나도 많은 아동 대상 애니메이션에서 즐겨 써왔던 전형적인 스토리이다. 작품에서는 이러한 스토리를 조금이라도 변주하려는 고민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캐릭터조차도 스토리처럼 진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캐리와 슈퍼콜라는 캐릭터의 뻔하지 않은 모습에서 제대로 승부를 겨루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주인공 ‘캐리’는 핑크색 머리띠와 티셔츠에 파란 멜빵바지를 입은 모습처럼 복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여자아이’ 하면 생각하는 모습처럼 사랑스럽고 귀엽게 행동을 하다가도, 누군가가 움직여야만 하는 순간에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서서 달려든다. ‘특공무술 빨간띠’라는 설정대로, ‘프리큐어 시리즈’ 같은 변신소녀물이 아니면 이런 부류의 애니메이션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주인공의 적극적인 액션을 펼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최종 보스와 상대하는 최후의 순간에서도 캐리의 액션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캐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인형 ‘콜라’의 몸속으로 들어간 외계인 주인공 ‘마스터’도 결코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다. ‘우주의 적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외계인’이라는 컨셉에 맞게 한동안은 사뭇 진지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마스터는 캐리와 점차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상당히 빈틈이 많은 캐릭터로 변신한다. 적의 감시에서 피하고자 시종일관 경계로 가득했던 마스터지만, 지구의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마스터 역시 꽤 유쾌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이와 함께 적들의 눈에도 더욱 쉽게 노출이 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렇게 복합적인 아군 캐릭터의 등장은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 캐릭터와 만나면서 더욱 흥미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한국이라는 배경을 잘 살린 서사와 배경의 디테일도 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작중에서 벌어지는 대다수의 사건은 2010년대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널리 퍼진 ‘학급 전용 인스턴트 메신저’와 관련된 일들이다. 캐리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에 계속 재미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학급 전용 메신저에 올리려 애를 쓴다. 캐리는 자신이 아끼던 인형 ‘콜라’ 안에 들어간 ‘마스터’를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마스터가 무수한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캐리는 빠르게 마스터와 친해지게 된다.
이전에는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온갖 특수효과도 마스터의 초능력만 있다면 매우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다. 캐리는 마스터의 힘을 빌려 만든 사진과 영상으로 빠른 속도로 반에서 유명 인사로 등극하지만, 그렇게 마스터의 능력을 쓰면 쓸수록 적들에게 자기 모습을 들킬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한다. 작품은 마냥 무거운 톤으로 흐르지는 않지만, 실제 사회에서 SNS가 지니는 양면성을 꽤 효과적으로 작품의 전개에 사용한 것이다. 동시에 이를 보여주기 위해 언급한 SNS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학급 전용 메신저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제작된 한국의 관객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를 만든 점이 돋보인다.
작품의 디테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가 다름 아닌 한국에서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LED 응원봉’이라는 점, ‘마스터’를 돕기 위해 함께 우주에서 지구로 숨어든 동료 외계인 ‘와쿠’가 꽈배기 가게에서 손님들의 이목을 끌 용도로 설치한 ‘홍보용 공기인형’으로 위장했다는 점과 같은 세부적인 포인트들이 작품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이렇게 한국의 일상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요소들의 배치는 한국에서 작품을 볼 관객들에게 캐리와 슈퍼콜라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만들며 더욱 친숙하게 작품 속으로 빠질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된다. 이전에도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언더독’ 같이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익숙할 요소들을 잘 짚었던 애니메이션을 만든 제작진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효과적으로 이 요소들을 티 나지 않게 작품의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내었다.
분명 작품의 전개는 앞서 지적했던 대로 단순하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 앞에 적을 피해 도망친 외계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다시 그들 앞에 등장한 적들에 맞서 함께 싸운다. 하지만 캐리와 슈퍼콜라의 제작진들은 뻔할 수 있는 스토리에 생동감 있는 캐릭터, 실제 현실의 모습을 잘 반영한 포인트의 삽입을 통해 일직선으로 흐르는 이야기에 개성 넘치는 요소들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한국 애니메이션 다수가 흥행과 별개로 수출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국적에 가까운 묘사를 계속 감행하는 가운데, 반대로 한국에서 익숙한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춰내 장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의 전개에서는 종래의 작품들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색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언젠가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는 스토리의 측면에서도 좀 더 나아질 수 있길 바라본다.
평결
인기 아동 대상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인 장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첫 시도. 스토리가 진부한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지만,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한국의 일상을 잘 살리는 작중 요소가 자칫 흔해 빠진 결과물이 될 수 있던 작품에 참신한 개성을 불어넣었다.